내가 생각하는 한반도 평화통일
초등학교 시절 자주 부른 노래 한 곡이 문뜩 떠오른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하 중략)…. 통일이여 어서 오너라. 통일이여 오라.’ - <우리의 소원은 통일 > 노래 중에서 -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과연 내가 살아가는 동안 한반도 평화 통일은 이뤄질까?’라는 물음이 떠나질 않았다. 그렇게 1년, 3년, 5년, 10년, 20년, 30년이 지났는데….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는 정작 초등학교 등지에서 없어져 버렸고, 통일은커녕 평화도 아닌 갈등과 경색함이 한반도를 체인처럼 칭칭, 칭칭 무수히 감고 있는 모습이 절로 느껴지고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오죽하겠는가?
내가 본격적으로 한반도, 평화통일이란 단어에 대해 깊은 한숨을 쉬며 ‘생각하는 로댕’처럼 사색에 빠진 때는 대학원 입학 직후였다. 그런데 로댕처럼 사색한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고, 오히려 나를 더욱 극심한 어려움 한복판으로 몰아가는 비극의 도화선이 구축되기에 이르렀다. 대학원은 갔으나 사실상 통폐합으로의 상당한 과정을 밟고 있었고, 교수님들은 물론 선배님들도 그저 빨리 논문 통과해서 빨리 대학원 나가자는 생각으로만 가득 찬 분위기 속에서 나 자신은 한반도, 평화, 통일이란 단어를 증오를 품은 채 해체 삭제하는 작업을 하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십여 년간을 일관되게 고수해왔다. 더욱이 동토의 시베리아처럼 혹독한 가정 경제의 어려움. 나름 성실히 열심히 살았음에도 삶의 양질이 전연 나아짐 없이 고통을 호소하며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숨을 캑캑거린 채 간신히 하루하루를 보내야 하는 눈물겨운 상황은 장기적인 악순환을 견고한 요새인 양 지탱시키는 척도가 되었다.
‘내 마음과 몸은 얼어붙은 시베리아인데…. 평화, 통일, 한반도를 이야기한다고 누군들 들어주리?’
그렇게 매정스럽게 시간의 폭포수가 한바탕 흘러간 후 얼마전부터 인터넷을 살펴보는데 (사)평화를 일구는 사람들 사이트를 접하게 되었고, 궁금해서 하나하나 클릭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십여 년 전 대학원 시절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다시 끄집어내기 싫고, 기억조차 하기 싫은 실패, 수치로 뒤덮인 오물 범벅의 흔적들.. 왜 주님께서는 지난날 이 시절을 다시 기억하고 떠오르게 하셨을까? 그 물음에 대한 답을 계속 주님께 여쭤보는 중이다.
그러나 그 대학원 시절 문뜩 인상 깊은 일이 다른 한구석에서 떠오르지 않던가? 비록 실패한 인생이고, 통일연구원이 되기 위한 꿈까지 다 말살된 채 눈에 보이는 성과와 효율은 하나도 없었지만…. 어떻게서든 스스로 동분서주하며 대중교통이나 밥 먹을 비용이 없어도 단 한 분의 북향민 선생님을 찾아뵈어 인사와 연락을 꾸준히 나누며 같은 이웃, 친구가 되고자 했던 몸부림의 흔적들. 선생님이 갑자기 울부짖으며 트라우마를 호소할 때 그 자리에 함께 있으면서 트라우마가 속히 회복되길 기도하며 진정성 있는 공감을 감당하고자 노력했던 시간들. 그나마 내가 성실히 감당했던 유일한 영역이다.
그때로부터 십 수 년이 지나온 현시점. 그동안 정책들도 변화되었고, 한국에 정착한 북향민 선생님들 삶에도 변화들이 진행되었음을 어렴풋이나마 듣곤 한다.
내가 생각하는 한반도 평화통일이 무엇이냐고 말한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절대로 사람의 힘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영역. 그러나 우리 인간이 할 수 없음을 인식할 때 하느님께서 당신의 계획하심에 따라 반드시 이뤄가시는 소중한 선물이라고 말이다.
성서에는 진정한 평화와 통일에 대한 많은 말씀이 있다. 그 중 두 가지를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먼저, 예언자 에케키엘에게 환상을 통해 두 개의 지팡이를 준비하라고 하신 하느님. 한쪽에는 지팡이에다가 ‘유다’라는 이름을, 다른 한쪽 지팡이에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적게 하신 후 양손에 각기 쥐며 외치라고 말씀하신 주님. 이는 솔로몬 왕 사후 르호보암 왕이 세켐에서 즉위하자마자 약 350여 년 가까이 반목과 분열을 거듭한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다시 주님 안에서 평화와 통일을 지닌 하나 된 공동체로 될 것을 가르쳐 주신다.
둘째로, 사도 바울을 통해 에페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가 된다고 하신 점. 성령도 한 분이시고, 세례도 하나라고 말씀하신 하느님. 이는 성자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갈등, 하나 되지 못함, 불평, 원망 등이 아닌 평화와 통일을 구현시키는 교회 공동체의 모습이 어떠한지 가르쳐 주신다. 실제로 초대교회는 로마제국의 핍박과 내부적인 분열, 불협화음을 과감히 이기고 수습하며 로마제국의 심장을 찢어버리는 강력한 공동체로 역사의 이름을 남겼다.
한반도 평화통일. 결단코 정책인, 전문가에게 맡겨진 책무가 아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는 교회 공동체 한 분 한 분이 삶에서 감당해야 될 귀중한 선물임을 유념해야 한다. 실제로 냉전 시기 서독과 동독이 통일되어 평화로운 독일로 거듭난 최고의 원동력은 바로 동독에 있는 성 니콜라스 교회에서 매주 진행된 기도 모임이다. 처음에는 자신의 죄와 교회를 위한 회개를 시작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하루속히 통일된 독일을 이루길 바라는 소망을 품게 되었고, 그때부터 동독 사람들이 한 무리씩 성 니콜라스 교회 앞마당으로 참여하면서 순식간에 동독이 무너지고 통일된 독일이 세워진 일은 지금도 역사의 기록에 선명히 남아있다.
한반도 평화통일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다. 교회 공동체 모든 분들이 하느님과 인격적으로 거룩하고 친밀한 관계를 누리고, 불신과 억압으로 뒤덮여 있는 사회를 하나씩 정화해 나가고, 무엇보다 한국에 정착한 북향민 선생님들을 그저 연민 동정하는 정도가 아닌 우리와 같은 사람이요 이웃이란 마음을 명확히 품고 기다려주며, 벗이 되어주고, 공감해주는 작업을 몸소 해나가는 모습을 꾸준히 섬기며 나아간다면, 어느 순간 서독과 동독이 하나가 된 것처럼 남한과 북한도 주님 안에서 하나 되는 놀랍고 감격스러운 선물을 맛보지 않을까? 이를 위한 준비가 되었을까? 그렇다면 지금부터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하나씩 실천하며 함께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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