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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나누는 소식 김현호 신부님 “생명평화도보순례”
작성자
운영자
날짜
22-05-12 12:56
조회수
559

우리는 나만 살고자 다른 존재를을 죽음의 길로 몰아넣는 반() 생명적인 문화를 참회하고 다시 살림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함께 걷습니다.“

김현호 신부님께서 지난 사순절 기간에 약 2주에 걸쳐 긴순례을 다녀 오셨습니다.

첫째 ; 포괄적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 촉구

둘째 ; 푸틴의 러시아에 의해 자행된 우크라이나 무력 침공 반대

의 제목으로 328일부터 49일까지 13일간의 여정으로 부산을 출발해서 영평사격장을 마지막으로 전쟁과 군사행동으로 아픔이 깃든 장소를 거쳐가면서, 곳곳에서 많은 분들과 함께 하면서 평화와 치유의 행군을 무사히 마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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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일구는 사람들(TOPIK)은 서울에서의 여정을 함께 하며 평화화 치유의 길에 함께 동참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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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호신부님 생명평화도보순례에 관한 인터뷰

 

1. “생명평화도보순례는 언제, 어떤 의미에서 시작하게 되셨는지?

올해로 생명평화도보순례는 9회차를 맡습니다. 생명평화도보순례를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는 2014년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면서 이루어졌습니다. 2014416, 전 국민이 생중계로 큰 참사를 지켜보았지요. 수학여행을 떠났던 아이들이 침몰되는 배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속수무책 지켜봐야 했습니다. 전 국민이 가슴 아파했지요. 지구 밖 달나라에도 갈 수 있는 기술과 능력을 지닌 우리가 304명의 생명을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얼마나 슬퍼했는지 모릅니다. 전 국민이 애도를 했지요. 그러나 몇 개월이 지나 어떠한 일이 벌어졌나요? 잊지 않겠다는 약속은 어느새 무색해지고 세월호 침몰의 진상규명을 외치는 유가족들의 언행을 이념적인 잣대로 판단하는 분위기가 만연해졌지요. 우리나라 역사가 대부분 그랬습니다. 역사적인 큰 아픔을 함께 공감하고, 왜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 그런 큰 아픔이 다시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깊이 성찰하고 대안을 찾기보다는, 쉽게 잊고 물질적 보상으로 상처 난 부위를 땜질하려는 경향이 짙었지요. 이러한 역사가 되반복되는 것을 극복해야 한다는 생각이 밀려왔습니다. 저만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 아니었더군요. 당시 우리 성공회 사제들이 대부분 저와 같은 생각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20149월에 팽목항에서 광화문까지 걸으며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겠다는 도보순례를 감행하게 되었지요. 이런 저희들의 순례를 지켜보던 이웃들이 말하더군요. ‘불이 꺼진 줄 알았는데, 우리들의 발걸음이 마치 꺼진 불을 다시 살리는 뒷불같다고...’ 이렇게 시작한 도보순례에 힘입어 매년 사순절 기간에 2주간에 걸쳐 긴순례를 하게 되었습니다.

 

2. ‘걷는다는 행위의 신앙적 의미를 설명해주신다면?

신앙의 이름으로 걷는다는 의미는 일종의 기도운동입니다. 여러 종류의 기도운동이 있겠습니다만 걷는다는 의미는 폭력으로 상처 나고 분열된 곳들을 비폭력적으로 치유하고자 하는 기도운동이 됩니다. 우리가 상처입은 존재의 마음을, 큰 아픔의 순간을 공감한다고 말하지만 얼마나 깊이 공감하고 있을까요? 당사자가 아닌 이상 깊이 공감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니고 그 어떤 보상이 뒤따르는 것도 아닌데 상처입고 분열된 현장을 걷는다는 의미는 자신의 온 몸으로 공감하고자 하는 몸부림이 됩니다. 온 몸으로 공감이 돼야 비로소 치유를 향한 절실한 기도가 시작될 수 있겠지요. 온전한 치유는 우리 안에 폭력적인 독소가 사라지고 지극히 작은 존재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자라날 때 이루어진다고 믿습니다. 온전한 치유를 경험한 이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걷는 행위는 온전한 치유를 향한 여정이 됩니다. 그래서 노동을 하듯 걸어야 하고 정직하게 걸어야 합니다. 산책이나 트래킹과는 사뭇 다른 의향을 갖지요. 그리고 이러한 걷기는 적어도 며칠 이상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지금까지 매년 사순절 기간 2주에 걸쳐 걷고 있지요. 처음엔 우리 인간의 의지로 진실에 이르고 정의를 세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걷게 됩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 육체의 한계에 이르면 스스로 무장해제되는 경험을 하게 되지요.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갖가지 가면들을 벗겨 냅니다. 내 안의 오만함, 나약함, 불의, 깊은 상처를 직면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웃한 존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되지요. 우리는 홀로 존재하지 않으며 서로 연결돼 존재함을 깨닫고 그 연결된 존재들의 상호 돌봄과 협력으로 진실과 정의에 이를 수 있음을 겸손하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사순절 고난주일을 앞두고 2주간 걷는 것이기에 마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기 위해 제자들과 걸었던 여정, 그리고 골고타를 향해 걸었던 주님의 십자가의 길을 연상케 합니다. 길 위에서 만난 수많은 존재들과 나누었던 하느님 나라에 대한 갈망, 죄없이 십자가의 죽음으로 향해야 했던 예수님의 고난에 조금이나마 동참하는 기회를 갖게 됩니다.

 

3. 올해 생명평화도보순례의 주제는 무엇인지?

매년 순례를 준비하며 기도의 주제를 찾습니다. 올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켜보며 우리 인간들이 얼마나 폭력적이고 악한 존재인지를 거듭 되돌아보게 됩니다. 그래서 이번 순례의 기도주제를 반전(反戰)으로 삼았지요. 전쟁으로 인해 결국 큰 상처를 받게 되는 존재들은 스스로 방어할 수 없는 존재들이겠지요. 수많은 생명들이 죽거나 다치게 될텐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속히 멈추길 바라는 마음을 한 걸음 한 걸음 담았습니다.

사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며 먼 나라의 일로만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남과 북으로 갈라져 대치하고 있고 언제든지 우크라이나에서와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서 살고 있지요. 우리는 이미 6.25 한국전쟁이라는 끔찍한 참상을 경험한 나라이지 않습니까! 그 상처가 너무나 깊어 오늘까지도 이어지고 있지요. 남과 북의 분단뿐만 아니라 소위 남남갈등의 뿌리도 그것에 기원한다고 생각합니다. 원한의 깊이가 매우 깊지요. 하여 이번 순례길의 여정은 전쟁의 상처가 깊이 깃든 곳을 잇는 순례였습니다.

6.25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제일로 많이 모였던 피난수도 부산에서 순례를 시작했습니다. 대구를 거쳐 성주와 김천, 옥천과 대전을 거쳐 병천과 평택, 오산과 수원과 안산 그리고 서울을 거쳐 동두천을 지나 포천에 이르는 길을 걸었습니다. 328일부터 49일까지 13일간 걸었습니다.

해방 후 한국전쟁에 이르는 시기에 이념적 갈등으로 이웃한 존재들을 무참히 죽여야 했던 양민학살의 현장을 걸었습니다. 순례길 곳곳에서 이러한 흔적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 아픔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미군에 의해 피난민들이 무참히 학살된 노근리마을을 지날 때는 전쟁 중에 일어난 무고한 희생에 대해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전쟁의 잔혹한 실상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조상 대대로 평화롭게 살던 마을에 갑작스레 중국을 겨냥한 무기가 설치되었고 그 이후로 마을은 날마다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큰 혼란 속에 살고 있습니다. 순례길에 하루는 그 마을 주민들의 손을 잡아드리고 상처입은 마음을 위로하고 힘내시라 격려하는 발걸음을 내딛기도 하였습니다. 올해 순례길을 통해 거듭 확인한 바가 있는데, 이 땅 곳곳에 외국군대 주둔지가 참으로 많다는 현실입니다. 외국군대 주둔지가 반환돼 시민공원으로 바뀌는 경우도 있지만,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외국군대의 주둔지는 더욱 커지고 견고해지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평택에 조성된 외국군대 주둔지는 커다란 도시를 방불케 했습니다. 순례의 목적지 포천에는 아시아 최대의 미군 사격장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외국군대의 주둔지가 조성되어 있는 한 한반도 내에서의 전쟁의 위험성은 결코 사라지지 않겠지요. 이러한 현실 앞에 순례자들의 발걸음이 무척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번 순례길은 반전이란 주제와 함께 우리 안의 전쟁을 깊이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무기를 손에 들고 싸우는 것만이 전쟁은 아니지요. 차별과 혐오로 이웃한 약자에게 상처를 주는 것 역시 전쟁입니다. 우리 사회 안에 자리잡고 있는 사회적 약자를 향한 차별과 혐오의 문화를 극복해 나가자는 기도를 한걸음 한걸음 담았습니다.

 

4. 신자들과 교회들의 참여는 어떤지?

사순절 기간에 걷는 순례가 아직은 낯선 모양입니다. 또한 순례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하루의 시간을 온전히 내야 가능하지요. 평일에 휴가를 내거나 주말 시간을 이용하여 함께 걸을 수 있지요. 코로나 상황에서는 더더욱 제약이 뒤따릅니다.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참여인원의 제한을 두기 때문입니다. 올해 사순절 순례는 당일 10명 이내로 인원 제한을 두었습니다. 순례길의 위치에 따라 2-3명이 걸을 때도 있었지만 성공회 교회가 위치한 지역에서는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심지어 지역주민들이 함께 걸었습니다. 순례길에 놓인 우리 성공회 교회를 숙박지로 사용하기 때문에 일종의 성공회 교회를 잇는 순례가 되기도 하지요. 부산교구의 경우 순례자를 위한 공간을 마련해 놓았더군요.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교회에 도착하면 사제와 수도자들 그리고 평신도들이 순례자들을 정성스레 맞이해주고 함께 걸었습니다. 대전구간을 걸을 때는 유성교회와 성남동교회 교우들이 앞장 서서 순례자들의 발걸음을 안내해 주었지요. 또한 순례를 마무리하는 고난주일에는 서울교구 나눔의집 교우들 100여명이 모여 사순절 생명평화도보순례의 여정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매번 순례를 통해 경험하는 은혜가 있습니다. 먹고 자고 이동하는데 필요한 경비를 사전에 마련하지 않는데도 다 채워진다는 것이지요. 주님께서 순례자들의 발걸음을 예비해 주십니다. 순례자들의 발걸음을 위해 마음을 함께 나눌 수 있는 형제와 자매들을 보내주시고 만나게 해 주십니다. 더구나 올해 사순절 순례에는 우크라이나 어린이 난민을 지원하기 위한 모금운동도 함께 전개했는데, 목표액 500만원이 다 채워지기도 했습니다.

 

5. (이전 순례까지 포함해) 순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지?

두 가지의 일이 기억에 남습니다. 하나는 2015년 사순절 순례입니다. 당시 순례길은 밀양에서부터 팽목항까지 걷는 여정이었지요. 당시 밀양은 송전탑 문제로 조상 대대로 살아오던 밀양의 할머니들에게 큰 아픔이 있던 때였습니다. 순례자들은 당시 할머니들의 편지글을 가슴에 품고 걸었지요. 밀양 할머니들이 세월호 참사로 어린 자녀를 잃은 유가족들에게 보내는 편지글을 직접 쓰셨고 순례자들은 그 편지글을 날랐습니다. 순례자들이 팽목항에 도착하던 날이 마침 세월호 참사 1주기가 되던 날이었지요. 그 편지를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전할 때의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이렇듯 순례는 아픔과 아픔을 잇는 발걸음이 되고 연대하는 발걸음이 되지요.

다른 하나는 순례를 통해 한 형제를 만났는데, 그 형제는 병원에서 치료불가 판정을 받았던 분이었지요. 걸어야 산다는 조언에 따라 우리 순례단과 함께 여러 해를 함께 걸었습니다. 그리고 성공회 거창교회를 지날 때, 거창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성공회 교우가 되었습니다. 순례자들의 축복 속에서, 순례단에 참여했던 신부님들의 공동집례로 세례를 받고 바우로라는 세례명까지 받았지요. 참으로 기뻐하며 다시 태어난 존재처럼 살았던 그 형제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몇 해 전에 그 형제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지요.

6. 신문을 통해 순례를 접할 신자들에게 전할 말씀은?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순례는 매우 오래된 전통입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벗어나 주님에게 더욱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영적 여정이 되지요. 특히 오늘날에는 우리의 영혼이 따라오기 힘들 정도의 빠른 속도로 살아가는 문화에 익숙한 채 살아가고 있지요. 이러한 때 순례의 여정은 우리가 잃어서는 안되는 가치들을 회복케 하고 우리의 온전한 신앙을 지켜가도록 돕는 매우 중요한 수행 여정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몇 해 전 충남 백석포교회에서 출발하여 강원도 강릉교회까지 순례를 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당시 직접 걸으면서 확인한 것이 있는데, 우리나라 선교 초창기에 선교사님들은 하루종일 걸어서 도착할 수 있는 지점에 기도처소를 세웠다는 것을 두 발로 걸으면서 확인할 수 있었지요. 백석포교회, 둔포교회, 팽성교회, 평택교회, 광혜원교회, 진천교회 등. 직접 두 발로 걸으면서 순례를 통해 교회를 세워나갔던 초창기 선교사님들의 신앙적 열정을 느낄 수가 있었지요.

우리 한국교회에 이러한 순례의 전통이 제대로 소개되지 못하고 영성수행으로 자리잡지 못한 점이 무척 아쉬울 뿐입니다. 사순절 기간 절반은 개인과 개인이 몸담은 공동체를 위해 기도하는 전례에 정진한다면 나머지 절반은 이웃들의 아픔이 있는 현장을 잇는 순례, 또는 초창기 선교사님들이 걸었던 길을 걸어봄으로 당시의 선교적 열정을 되새겨보는 순례의 여정을 가져보면 우리의 신앙이 더욱 온전해질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